이야기 속으로

사이트: Philosophy & CINEMA HUMANITAS(철학과 영화인문학 교실)
강좌: P301.친구,우정-어린 왕자,그린 북
전자 책: 이야기 속으로
출판인:: 손님 사용자
날짜: 화요일, 28 10월 2025, 4:29 PM

설명

이야기 속으로

1. 함께라면 높은 산도 못 갈 일 없어요

함께라면 높은 산도 못 갈 일 없어요

“태원이를 도와주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9년간 이어진 장애-비장애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동산고 3학년5반 김준성(18·오른쪽)군은 제대로 걷지 못해 전동 휠체어를 타야 하는 같은 반 김태원(18·왼쪽)군과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학교에서 그의 손과 발 노릇을 해주고 있다. 준성군은 “학교 안에서 태원이를 도와줄 사람 손을 들어봐”라는 4학년 때 담임교사의 말에 손을 번쩍 든 이후 태원군과 함께해왔다.

준성군은 어렸을 때 뇌성마비를 앓은 후유증으로 거의 걷지 못하는 태원군을 위해 수업 도중 떨어뜨린 연필을 집어주는 것부터 화장실은 물론 영어회화나 컴퓨터 강의실 등으로 휠체어를 밀어주며 함께 이동했다. 그런 도움 덕분에 태원군은 영어 노래를 부르고 컴퓨터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중학교 때 같은 학교로 진학했으나 같은 반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준성군은 태원군의 교실로 자주 찾아가 도와주며 우정을 쌓아 갔다. 준성군은 백일장에 나가고 싶어 하는 태원군의 마음을 읽고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새얼문화백일장’ 행사장에 데려다줘 1등을 하는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산고에 나란히 진학한 이들은 학교 쪽의 배려로 같은 반에서 모든 것을 함께하고 있다. 제주도 수학여행 때는 전동휠체어로 갈 수 없는 산에도 부축하며 함께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이제 공부나 이성문제, 대학 진학 등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서로 힘이 돼주는 ‘참 친구’가 됐다.

태원군은 “준성이의 등에 업혀 바라본 마라도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고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담임 선생님이 글 재주가 좋다고 칭찬해 주셔서 대학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려 한다”며 “준성이가 없었다면 대학 진학의 꿈은 꾸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성군은 “태원이를 좀더 편안하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며 “태원이를 도와주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특수교육학과로 진학해 태원이 같은 장애 학생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학교 최기형 교감은 “준성이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공부도 열심히 해 반장을 맡고 있다”며 “교사들도 태원이에 대한 준성이의 우정에 흐뭇해 하고 있다”고 준성군의 따뜻하고 변치 않는 행동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영환 기자, <한겨레> 2010-11-16, 기사

2.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


벚꽃 흐드러진 길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가 웃고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로 보인다. 그 왼편, 편지지 바탕에는 11줄짜리 글이 적혀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13년 캠페인’ 광고는 경고성 메시지로 끝맺는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새 학기를 앞두고 내놓은 이 광고는 현재 일부 서울 시내·마을버스 등에 붙어 있다. 이를 퍼나르는 누리꾼들을 통해 광고를 본 학생들도 많다. 10대라고 밝힌 한 누리꾼(@Tiffanis****)은 “우리 학교에선 이미 ‘우정파괴 광고’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험 잘 치려면 친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여하려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입시경쟁 속에서 청소년들은 가뜩이나 ‘친구’를 잃어가는 상황이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역사회·교내 자치활동에서 청소년의 참여 정도를 나타내는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36개 나라 청소년 가운데 35위를 차지했다. 또래 등과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교생 26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는 문항의 만족도 지수에서 고등학생은 5.0만점에 3.20점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4.42점, 중학생 4.24점과 비교된다. 입시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동급생을 친구가 아닌 치열한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이영탁 서울 수락중 교사는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을 통해 인생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협력과 협동이고, 실제로 상급학교 진학은 물론 인성을 위해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융합할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광고가 버젓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왜곡된 교육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상식 교수는 “이 광고는 인간관계를 끊는 게 시험 전략으로 제시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수준이란 걸 반영하는 동시에 학부모·학생들이 학교를 ‘좋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교육업체의 ‘비교육적인’ 광고가 논란이 된 게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사교육업체 ‘대교’는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입영통지서를 받아 든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놀이터와 이별하는 초등학교 입학생의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다. 경쟁 교육에 휘말린 사회 분위기가 이런 광고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메가스터디 쪽은 “새 학기가 됐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10대들에게 가장 와닿는 소재인 ‘친구’를 차용했다. 캠페인 광고인 만큼 속뜻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김승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학생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상술”이라고 지적했다.

엄지원 박수진 기자, <한겨레> 2013-02-26, 기사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우정파괴’ 광고가 인터넷 세상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한 인터넷 포털에는 67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페이스북에서도 1000회 넘게 공유됐습니다.

많은 네티즌과 언론은 이 광고에 대해 “시험 잘 보려고 친구를 버리라는 말이냐”며 메가스터디가 비도덕적이고 비교육적인 내용을 선전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혹자는 메가스터디에 대한 비난을 넘어 한국의 교육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정 혹은 친구 간의 인간관계와 같은 가치들과 ‘공부’를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사실 이미 교육현장에서 많은 교사들이 해온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교육운동단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이 광고를 비틀어 제작한 ‘패러디 광고’가 화제입니다. 패러디 광고는 메가스터디 광고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교복을 입고 웃고 있는 두 명의 여학생이 있고 왼쪽에는 광고 문구가 있습니다. 다만 그 내용이 확연히 다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성적이라는 어쩔 수 없는 명분으로

학원가를 헤매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너의 우정은 하루하루 서랍 속에서 미뤄지겠지. 

근데 어쩌지?

우정 없이 최고가 된들

성적이 너의 우정을 대신해주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어른들이 너의 우정을 만들어주지 않아.”


‘성적을 위해 친구를 버리라고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던 메가스터디의 광고와 대조됩니다.


3.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친구’만큼 듣기 좋은 말도 없다. 친구 하면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 친구 사이에도 두 얼굴이 존재한다. 시기와 질투가 싹트고 때로는 갈등과 배신이 생긴다.


 왕따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는 일본 소설가 시게마쓰 기요시의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대개의 어린이 책이 친구의 소중함이나 우정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진정한 친구란 누구이며, 우정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친구를 편의에 따라 내 편으로 혹은 적으로 대한다. 친구는 또 아무리 믿고 의지했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다. 작가가 보여준 친구 사이의 갈등과 집착은 소설 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헛헛해질 수 있다. 내 경우는 쓸쓸하기까지 했다.

 모두 열편으로 구성된 소설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에미가 중심에 있다. 에미의 친구들 또는 남동생 후미의 친구들이 등장해 다양한 관계를 보여준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힘들다.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친구에 대한 강박을 만든다. ‘카멜레온을 만나다’에서 호타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 “혼자 화장실에 갈 때의 그 허전함과 창피함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반 여자아이들 모두와 친해지려고 부러 개그맨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럴수록 어느 그룹에 설 건지를 강요받고 때로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저보다 앞서가는 친구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가슴을 누른다. ‘가위바위보’에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후미의 단짝 친구였던 미요시는 중학교에 진학한 뒤 후미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열등감에 시달린다. 초등학교 때 후미랑 친했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저보다 앞서가는 친구 때문에 자신이 못나 보이고 밉다.

 십대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 모든 불편한 관계에 대한 답을 작가는 두 아이 에미와 그녀의 친구 유카를 통해 보여준다. 에미는 친구들과 놀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모두를 원망했고 그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 유카는 신장이 안 좋아 늘 결석을 하다 보니 친구가 없다. 왕따였던 에미와 유카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친구 문제로 힘들 때마다 에미에게 “둘이만 있으면 외롭지 않니? 친구는 많은 편이 더 즐겁잖니?” 혹은 “유카가 입원해서 쓸쓸하지 않니? 친구가 된다는 건 그 애랑 쭉 같이 있고 싶고 그래서 친구가 되는 거 아니니?” 하고 묻는다.

 글쎄, 좀 쓸쓸한 말일지 모르지만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모두와 친한 사람은 나의 진짜 친구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내 곁을 떠나도 평생 기억된다면 그는 진짜 친구이고, 그런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편이 덜 외로운 거다. 함께 있어도 우리는 혼자라고 느낄 때가 많지 않은가. 그건 외톨이보다 더 외로운 일이다.

 나는 누구의 친구 이전에 그냥 나다. 그래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한겨레> 2013-06-30, 기사


4.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는 중국 고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우정의 예 중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이해와 공감, 즉 '지음(知音)'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지음'이란 한자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알다(知)'와 '소리(音)'를 결합한 것으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는 이러한 '지음'의 관계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

백아는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거문고 연주자였으며, 그의 음악은 현세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해 항상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때 백아의 삶에 종자기가 등장합니다. 종자기는 백아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는 때로는 폭풍이 산을 휩쓸고 가는 듯한 연주를 하고, 때로는 시냇물이 조용히 흐르는 듯한 연주를 했습니다. 종자기는 이 모든 연주를 듣고 정확히 그 의미를 파악했습니다. 폭풍과 시냇물의 연주에 각각 "이것은 산을 휩쓸고 가는 폭풍의 소리요, 저것은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로군요"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이해는 완벽했습니다.

 '지음(知音)'의 의미와 중요성

이 이야기에서 '지음(知音)'은 단순히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까지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는 이러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음'은 매우 드물고 귀중한 관계로, 이를 찾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 줄 '지음'이 없다고 느끼고 거문고를 부수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우정과 이해의 가치를 강조하며,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보여줍니다. '지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러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원문 출처

춘추시대()에 백아()라는 거문고의 명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을 잘 이해()해 준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켜자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굉장()하네. 태산()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일세.」 또 한번은 백아()가 도도히 흐르는 강()을 떠올리면서 거문고를 켜자 종자기()가 말했다. 「정말 대단해. 양양()한 큰 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는 것 같군 그래.」 이처럼 종자기()는 백아()의 생각을 거문고 소리를 통해 척척 알아 맞혔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바위 그늘에 머물렀다. 백아()는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거문고에 담았다. 한곡 한곡마다 종자기()는 척척 그 기분()을 알아맞혔다. 이에 백아()가 거문고를 내려놓고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네. 그대의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곧 내 마음 그대롤세. 그대 앞에서 거문고를 켜면, 도저히 내 기분()을 숨길 수가 없네.」 그 후 불행()히도 종자기()가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백아()는 거문고를 때려부수고, 줄을 끊어 버리고는 두 번 다시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기 거문고 소리를 알아 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5.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는 공손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사과나무 밑에 있어." 좀 전의 그 목소리였다. "너는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서 나와 함께 놀아.. 난 정말로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아..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게 뭐지?"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병아리들도 길러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지. 너 병아리를 찾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만든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차츰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꽃 한 송이가 있는데..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아,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가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몹시 궁금한 기색이었다.

"그럼 다른 별에서의?" "그래" 

"그 별엔 사냥꾼들이 있지?" "아니, 없어."

"그거 참 이상하군! 그럼 병아리는?" "없어"

"이 세상엔 완전한 데라곤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단조롭단다. 나는 병아리를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병아리들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 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어린 왕자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부탁이야..나를 길들여줘!" 하고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다음날 다시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 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또는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 거고..."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 것만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네가 원했잖아" 어린 왕자는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의 말이었다. "한데 넌 울려고 그러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니 넌 이익 본 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익 본 게 있지.. 밀밭의 색깔 때문에 말야.." 여우가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내게 돌아와서 작별인사를 해 줘. 그러면 내가 네게 한 가지 비밀을 선물 할께"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들에게 그는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 그거 계속 말했다.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는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병풍으로 보호해 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 (나비 때문에 두세 마리 남겨둔 것 말고..)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또 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 기울여 들어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로 돌아갔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 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6.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 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은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 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