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
3.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친구’만큼 듣기 좋은 말도 없다. 친구 하면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 친구 사이에도 두 얼굴이 존재한다. 시기와 질투가 싹트고 때로는 갈등과 배신이 생긴다.

왕따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는 일본 소설가 시게마쓰 기요시의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대개의 어린이 책이 친구의 소중함이나 우정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진정한 친구란 누구이며, 우정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친구를 편의에 따라 내 편으로 혹은 적으로 대한다. 친구는 또 아무리 믿고 의지했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다. 작가가 보여준 친구 사이의 갈등과 집착은 소설 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헛헛해질 수 있다. 내 경우는 쓸쓸하기까지 했다.
모두 열편으로 구성된 소설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에미가 중심에 있다. 에미의 친구들 또는 남동생 후미의 친구들이 등장해 다양한 관계를 보여준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힘들다.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친구에 대한 강박을 만든다. ‘카멜레온을 만나다’에서 호타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 “혼자 화장실에 갈 때의 그 허전함과 창피함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반 여자아이들 모두와 친해지려고 부러 개그맨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럴수록 어느 그룹에 설 건지를 강요받고 때로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저보다 앞서가는 친구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가슴을 누른다. ‘가위바위보’에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후미의 단짝 친구였던 미요시는 중학교에 진학한 뒤 후미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열등감에 시달린다. 초등학교 때 후미랑 친했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저보다 앞서가는 친구 때문에 자신이 못나 보이고 밉다.
십대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 모든 불편한 관계에 대한 답을 작가는 두 아이 에미와 그녀의 친구 유카를 통해 보여준다. 에미는 친구들과 놀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모두를 원망했고 그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 유카는 신장이 안 좋아 늘 결석을 하다 보니 친구가 없다. 왕따였던 에미와 유카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친구 문제로 힘들 때마다 에미에게 “둘이만 있으면 외롭지 않니? 친구는 많은 편이 더 즐겁잖니?” 혹은 “유카가 입원해서 쓸쓸하지 않니? 친구가 된다는 건 그 애랑 쭉 같이 있고 싶고 그래서 친구가 되는 거 아니니?” 하고 묻는다.
글쎄, 좀 쓸쓸한 말일지 모르지만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모두와 친한 사람은 나의 진짜 친구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내 곁을 떠나도 평생 기억된다면 그는 진짜 친구이고, 그런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편이 덜 외로운 거다. 함께 있어도 우리는 혼자라고 느낄 때가 많지 않은가. 그건 외톨이보다 더 외로운 일이다.
나는 누구의 친구 이전에 그냥 나다. 그래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한겨레> 2013-06-30,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