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2007, 창비

 

 

 

 

아버지 .......... Christine McNamara


내 나이 네 살 때는 아버지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다섯 살 때는 아버지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여섯 살 때는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여덟 살이 되면서 아버지가 모든 걸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나이 열 살 때는 아버지가 자란 옛날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나이 열 두 살 때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며,

그것은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열네 살 때는 아버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했죠.

내 나이 스물 다섯 살 때는 아버지는 세상 돌아가는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만큼 오래 살았으니까 아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서른 살 때는 아마 우리는 아버지 생각을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경험이 많은 분이더군요.

내 나이 서른 다섯 살 때는 아버지와의 대화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마흔 살 때는 아버지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 하실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분은 너무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내 나이 쉰 살 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뭐든지 다 드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현명한 분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게 안타깝습니다.

그분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